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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
    인문/책 2021. 2. 23. 01:51

     

     

     

     

    책 이름 세 여자 1, 2
    저자 조선희
    작성일 2020.11.17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여성 혁명가였던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도시에서 활동한 그들의 행보를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본 서평에서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견들이 타파되는 과정, 그리고 스스로 던진 질문과 그로 인한 답변에 관해 서술하고자 한다.

    1.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편견

     본 작성자에게 여성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유관순 열사나 남자현 열사 등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기억되는 사람이 몇 없다. 애초에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인물이 얼마 없었고, 그마저도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아 부끄럽지만 기억에 남은 분들이 매우 적다. 그래서인지 ‘여성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남성보다 독립운동에 가담한 비중이 더 작게만 느껴졌다. 더더욱 당시 시대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매우 낮았고, 가부장적 질서가 강고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여성은 남성을 뒷바라지하는 이미지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는 본 작성자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세 여자의 행보를 세계지도 위에 표현한 그림을 보며 ‘여성’이 그 멀리 모스크바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났다는 것에 참으로도 놀라웠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당돌하고 주체적인 세 여자의 모습을 보며 당시 여성에 대해 너무 편협하게만 생각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소설 속의 세 여자는 깨어있던 ‘신여성’이어서 모든 여성에 대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도 조선여성동우회를 설립하는 등의 여성 중심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책에서 “훈정도 아지트키퍼 세죽은 부엌을 벗어나지 못했고 정숙은 그게 불만이었다(p.133)"라는 문구와 함께 남편 박헌영의 잡일을 대신하는 주세죽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허정숙 간의 언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실제 대화 내용이 아닌 작가의 픽션이 담긴 부분인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 운동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1)에서 ‘정숙은 젠더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분명 가부장적인 문제에 대해 한마디하고 넘어갔을 것 같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라고 밝히며, ‘실제로 조직 운동을 같이 하면서도 간부직에는 남성만 임용하는 듯 남성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로 허정숙이 1925년 <신여성> 11월호에 실은 가정에 대한 비판 기사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오래 예전부터 구속과 압박 밑에서 자유 없이, 오직 노예의 생활을 하고 지나왔습니다. 가정이라는 지옥 속에서 남편의 노예, 부모의 노예, 자식의 노예, 예의 도덕의 노예, 가사노동의 노예, 경제의 노예로서 이중 삼중의 노예로 있던 것은 (지금까지의) 사실이 웅변으로 증명합니다.”2)라는 구절을 보면 그녀가 젠더 의식에 대해 얼마나 깨어있었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작가가 허정숙이라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남성 중심의 구조에 대해 다룬 대목은 실제 그녀를 보는 것과 같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본 구절은 작가의 현대적 관점이 묻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 당시 사회 분위기를 살펴보면 여성의 권리가 매우 낮았고,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구조가 당연했던 시기이다. 주세죽과 고명자의 태도만 보아도 허정숙은 다른 여성들과 다르게 유별나게 깨어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허정숙과 주세죽을 대비된 입장으로써 남성 중심의 구조에 대해 논한 부분은 그저 ‘언급’이 아닌 ‘강한 비판’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면 굳이 주세죽과의 언쟁으로 해당 내용을 풀어써야만 했을까? 당시 여성 중에서도 흔치 않은 급진적 페미스트인 허정숙을 주세죽과 대립하게 설정한 것에는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작가의 현대적인 시선 또한 담겨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결코 가볍게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2. “나였으면 당시에 독립운동을 했을까?”

     본 작성자가 <세 여자>를 서평 대상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몇 주 전, 지속된 과제에 지쳐 친구와 신세 한탄을 한참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현재 3만원이 1938년 당시에는 2억원이 넘는 가치였다는 친구의 말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가고 싶다 답했었다. 그러자 친구는 “나는 그런 암울한 시대로 가고 싶지 않아. 너무 불행하잖아. 나 같은 성격이면 돈 벌러 갈게 하고 취업 사기당해서 위안부로 끌려갔을 수도...”라고 답했다. 하지만 본 작성자는 “나였으면 어땠을까?”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다 끝끝내 답을 보내지 못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었고, 당시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찝찝함만 남은 채 대화는 끝났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여성’으로서의 삶을 엿보며 “나였으면 당시에 독립운동을 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본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역사에 대한 무지함에 답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었더라면, 지금은 본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답변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고 난 직후에는 주체적인 의지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끊임없이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침없이 내뱉는 성격이기 때문에 허정숙과 비슷한 면모가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것은 단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특히 고명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결론이 조금 흔들렸다. 고명자는 강경의 대지주 집안의 고명딸로 그야말로 ‘아가씨’였다. 즉,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모스크바로 떠났다. 과연 본인이 그녀처럼 안정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독립운동에 선뜻 나설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조금 망설여진다. 그녀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원래 누리고 있던 것을 포기하며 소중한 가족들을 버리고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만큼 두렵고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고, 그만큼 본인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 “세 여자는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상이 아닐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알면서도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망설인다는 게 참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이 세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의 인생을 바쳐가며 투쟁했는데 말이다. 재산도 버리고, 애인과 가족도 버리고 더 버릴 것이 없을 때는 목숨까지 버린 그들의 행보를 되새길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편안함이냐 진리냐에 대해 대립하고 있는 본인이 수치스럽다.
     그래서일까, 여성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던 그 시기에 세 여자가 보인 자주적인 자세는 더 잊을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상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 그들은 본 작성자와 비슷한 또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인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남성에게 이끌린 결정이 아닌 자신의 길을 구축해 나갔다. 끊임없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했고, 그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단호했다. 수많은 실연과 고통 속에서도 견뎠고, 충분히 무너질 수 있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청춘을 바쳐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정말 충실히 살아갔다.

    4. 일제강점기에 대한 편견

     작가는 에필로그에서‘세 여자가 살았던 때는 역사의 가장 음침한 골짜기였음에도 그들의 인생은 그저 지옥은 아니었다.’며 ‘여자들은 씩씩했고 운명에 도전했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p.377)’라고 전했다. 본 작성자는 이 말에 깊은 공감이 갔다. 이전에는 ‘일제강점기’라 하면 ‘암울한 시대’라는 부정적인 시선만 못 박혀있었다. 그래서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친구의 말에 동감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일제강점기 때가 그저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책 표지에 수록된 세 여자의 사진만 봐도 암울하다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단발을 하고 개울에 발 담그며 노닥거리는 모습은 청춘 그 자체이다.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사랑은 존재했고, 뜨거운 동지애도 있었다. 그들은 어두운 사회 속에서도 ‘독립’이라는 희망과 꿈을 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그래서 암울하다고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시대 전체를 불행하게만 바라본다면 그들의 청춘은 어디로 가는가? 그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인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지금껏 역사를 배우면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속상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분노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시선은 그 속에서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위해서라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로 <세 여자>는 당시를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쓰였기 때문에 더 몰입되었다.

    5. “왜 그동안 세 여자는 주목받지 못했는가?”

     책을 읽으며 가히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역사에 무지한 본 작성자조차 남성 등장인물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친숙한 이름들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 등장인물들은 아예 생소했다. 세 여자는 그 어떤 남성보다 강한 기개를 보여주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독립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였는데 왜 남성만이 기억되고 있을까? 박헌영, 여운형, 김단야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분명 역사학자들이 남성들에 대해 사료 조사 할 때 이 여성들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왜 그동안 세 여자는 주목받지 못했을까? 사료가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면 여성들의 업적이 남성과 비교해 기억될만하지 않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조선희 작가와 함께하는 <세 여자> 북토크3)에서 ‘사료가 적어 책 편찬에 힘들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작가는 ‘러시아 측에 방대한 자료가 남아있어 사료는 충분했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허정숙만 보더라도 통일 단체, 여성단체의 요직을 맡을 만큼 잊힐만한 업적을 가진 이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선을 좀 더 넓혀서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앞에 서 밝혔듯이 본 작성자는 알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이 적어서 그러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수많은 여성이 우리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있다. 2019년 3월 자 연합뉴스 기사4)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에 실린 여성 독립운동가는 11명뿐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남성은 독립운동가 및 근현대사 인물 총 192명이 1,355회 언급된 데 반해 여성은 38회밖에 언급되지 않았다. 더불어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은 한 인터뷰5)에서 ‘남성 중심으로 역사를 보도록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 독립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며 학교 역사교육의 편향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외에도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에 몸 바쳤던 이들에 대한 복권도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지만 그 가운데 특히 여성들에 대한 대중적인 조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즉, 우리는 그동안 세 여자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이유로 외면한 것이다. 분단과 냉전에 의해 가려진, 그리고 성차별에 의해 지워졌던 반쪽짜리 역사만 바라본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 본 작성자는 남성 중심으로 쓰인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본인에게 분노를 느꼈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역사에 대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만 착실히 공부하고, 더 찾아보려는 노력은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여성이 적게 쓰였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의미로 이 <세 여자>라는 책은 본 작성자에게 여러모로 다양한 시선을 일깨워 주었다. 첫 번째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알고 있던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찰의 끝없는 연속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라는 점이다. 가려져 있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 때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세 여자>는 앞으로 나이가 들어 다시 마주했을 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아 기대된다.

     

    * 참고문헌

     

    1) TBS 시민의방송, “[TV책방 북소리] 세 여자, 조선희”(2017.08.15.), <www.youtube.com/watch?v=2N-Cfzizyxo>> (참고일 : 2020.11.17.)
    2) 위키백과, “허정숙” (2020.07.24.) <ko.wikipedia.org/wiki/%ED%97%88%EC%A0%95%EC%88%99#%EA%B0%80%EC%A0%95%EC%97%90_%EB%8C%80%ED%95%9C_%EB%B9%84%ED%8C%90> (참고일 : 2020.11.17.), 2.3.4절
    3) 스몰토크, “[스몰토크 책리뷰] 세여자 2부 - 조선희” (2019.05.07.), <www.youtube.com/watch?v=q7x4ayosm9A&t=94s>, (참고일 : 2020.11.17.)
    4) 연합뉴스, “[팩트체크]① 여성 독립운동가 조연에 불과했을까?”(2019.03.08.), <www.yna.co.kr/view/AKR20190308040500502>, (참고일 : 2020.11.17.)
    5) 여성신문, “이준식 “남성 중심으로 역사를 보도록 배워왔다””(2019.08.11.), <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275>, (참고일 : 2020.11.17.)

@Nyajjyang